유년 시절은 늘 어려웠으며, 학창시절 선생님께 차별을 당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버킷 리스트를 하나 더 추가했다.
커서 성공한다면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돕겠다고 말이다. 패션 그룹 (주)오아이 스튜디오 정예슬 대표의 이야기다.
지난달 18일, 패션 그룹 (주)오아이 스튜디오 정예슬 대표를 만난 곳은 성수동에 위치한 회사 집무실이었다. 정 대표는 이제 막 광화문 사랑의열매 본부에서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식을 마치고 돌아와 한숨 돌리던 참이었다.
업무와 디자인 작업을 겸하는 정 대표의 집무실은 깔끔하면서도 감각적이었다. 잘나가는 패션 브랜드 대표의 방다웠다고 할까. 군더더기 하나 없이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갖춘 모습에서 정 대표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입식을 마친 소감부터 물었다.
“가입을 결정하고 처음 입금할 때 되게 얼떨떨하면서도 무척 뿌듯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가입식에 참석하고 보니 더 보람되더라고요. 아주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
정 대표는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3년 전부터 국내외 구호단체에 기부하며 나눔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랑의열매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면서 어릴 적 꿈꾸던 하나의 버킷 리스트를 완성했다.
정예슬 대표가 2011년 론칭한 ‘오아이오아이(O!Oi)’는 독특한 감성과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국내 10대와 20대에게 무척 인기 있는 브랜드다. 이효리, 지드래곤 등 인기 연예인들이 그의 옷을 입어 더욱 유명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쇼핑몰 인기에 힙입어 2016년 글로벌 브랜드 탑샵(Top Shop) 입점에 성공, 중국·홍콩·일본뿐 아니라 유럽 시장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밖에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9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 30인’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성공을 이룬 대표적 청년 사업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정예슬 대표는 기부를 한 후에야 비로소 꿈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저는 굉장히 어려운 형편에서 자랐어요. 당시는 무상 급식이 아닐 때라… 급식비가 밀려 창피를 당해본 적도 있고요. 그때 생각했죠. 커서 성공하면 어려운 친구들이 최소한 내가 경험한 어려움은 겪지 않게 해주고 싶다고요.”
이번 기부는 어려웠던 시절 정 대표가 그의 버킷 리스트에 적어놓은 꿈이었다. 꼭 이루고 싶은 꿈 말이다.
정예슬 대표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런데 어떻게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브랜드까지 론칭하게 되었을까?
“제 장점이자 단점인 추진력 강한 성격과 맞물리는 이야기예요.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는데, 수능 보고 한 달 만에 자동차와 가구에 꽂혀서 산업디자인으로 진로를 확 틀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니 판단 미스였다는 걸 깨달았죠.(웃음)”
다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진로를 고민하다 휴학 후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학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다양한 디자인 경험을 쌓고 영감을 얻은 후 창업을 했다.
정 대표는 창업 초창기는 사업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1인 기업에 지나지 않았다며 웃는다.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하니 상대적으로 아버지뻘 되는 거래처 사장님들을 대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어요. 제 잘못 아닌 일에도 속된 말로 덤터기 쓰는 일도 종종 있었거든요.”
정 대표도 한때는 어려운 형편을 원망하기도 하고, 왜 이렇게 가난할까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바꾸지 못해도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을 만들어냈다.
불우했던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아동과 청소년에 가장 관심이 많아요.
기부를 결정한 것도 저와 같은 힘든 경험을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어요.
정예슬 대표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렵고 힘든 순간에는 꼭 이 책을 찾아 든다. 나눔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도 정 대표는 이 작품을 예로 들었다.
“나눔은 인간이 서로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따뜻함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힘들 때마다 이 책을 읽어요. 책을 읽으면… ‘그래,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거다. 그런 거다’ 하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곤 해요.”
정예슬 대표는 앞으로 기부뿐 아니라 직접 봉사 현장에 나갈 계획도 있다. 나눔의 온기 또한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어려운 현실도 언젠가는 경험이 되더라고요. 힘들다고 주저하지 말고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기부만큼이나 간절한 제 바람이에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정예슬 대표는 따뜻한 응원과 조언도 잊지 않는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낸 사람의 말이어서 그럴까, 울림이 크다.
글 강은진 사진 김기남